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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17> 극장 후기

by Mr.츄 2025. 7. 22.

영화 &lt;미키17&gt; 극장 포스터

봉준호 감독이 2025년 선보인 영화 <미키17>은 전작 <기생충>이나 <설국열차>와 마찬가지로,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철학적 질문이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Mickey7』이며, 영화는 그 설정을 바탕으로 죽음을 반복하는 복제 인간 ‘미키’의 자아 정체성 문제를 중심에 둡니다. 극장에서 직접 관람한 결과, 이 작품은 단순한 우주 SF를 넘어 인간 존재와 윤리, 시스템과 저항을 이야기하는 매우 도전적인 영화였습니다.

반복되는 죽음과 자아, SF의 철학적 확장

<미키17>의 주인공 ‘미키’는 극중에서 죽을 때마다 복제되어 되살아나는 특수 임무자입니다. 그는 외계 행성 ‘니플하임’ 개척 임무 중 위험한 작업을 전담하며, 사망 시 복제된 육체와 저장된 기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설정은 <클라우드 아틀라스>, <문>,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SF 영화의 핵심 주제인 존재의 연속성과 자아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 미키가 몇 차례 죽음을 겪으며 생과 사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과정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블랙 유머가 섞인 연출로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5번째 죽음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웃음과 충격을 동시에 느꼈는데, 이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르 뒤섞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기존의 ‘미키17’이 사망한 줄 알았던 이전 버전의 미키가 살아있음이 드러나며 내적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두 명의 동일 인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나는 진짜인가, 복제품인가?”, “기억과 육체 중 어느 것이 나인가?”라는 존재론적 딜레마가 폭발적으로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SF적 설정이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 <미키17>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원맨쇼, 감정의 복제까지 연기하다

<미키17>은 로버트 패틴슨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복제 인간 ‘미키’의 여러 버전을 연기하면서, 기억을 공유하지만 감정은 다른 자아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특히 ‘미키17’과 ‘미키18’이 처음으로 서로를 인식하는 장면에서는, 같은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정서와 반응을 통해 관객에게 혼란과 몰입을 동시에 안깁니다. 그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감정선이 분명했고, SF 장르 특유의 차가운 톤 속에서도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을 전달해냅니다. 특히 복제 인간의 한계에 좌절하고, 시스템의 소모품 취급에 분노하는 연기에서는 <테넷>이나 <더 배트맨>에서 보여주었던 패틴슨의 복합적 감정 표현력이 더욱 성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객으로서 놀라웠던 점은, 로버트 패틴슨이 1인 2역이 아니라 한 인물 내에서 복수의 정체성과 감정을 유연하게 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연기 기술을 넘어, 자아 분열과 철학적 질문을 배우의 신체와 표정만으로 구현해낸 성과였습니다.

봉준호식 세계관과 비판, 인간 시스템에 대한 은유

영화 <미키17>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계층·권력·자본 시스템 비판이 SF 세계 안에 정교하게 녹아 있습니다. 외계 행성 개척이라는 미래 설정 안에 숨겨진 현실적 은유들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미키는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지만, 다른 엘리트 요원들과는 전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그가 복제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죽음을 감수할 의무가 생긴다는 설정은, 곧 우리 사회의 소모품 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상징합니다. 또한, 개척 행성을 운영하는 상위 계층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며, 복제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술 발전이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착취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후반부, 두 미키가 협력하여 시스템을 전복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그리고 복제 인간이 스스로 존재의 주체가 되어가는 서사가 드라마틱하게 완성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과학과 윤리, 생명과 자아, 권력과 시스템이라는 주제를 정교하게 버무려,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사유에 빠지게 만듭니다.

<미키17>은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SF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존재와 죽음, 시스템에 길들여진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묻는 철학적 텍스트이자, 봉준호 감독의 비판 정신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담긴 작품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그 안에서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복제 인간이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우리 안의 자아로 설득시켜냅니다. 장르적 재미, 시각적 몰입도, 연출과 연기의 깊이까지 모두 충족하는 <미키17>은 2025년 상반기 최고의 SF 문제작이자, 오래 기억될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