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영화 <야당>은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로, 허구 속 캐릭터지만 현실 정치와 맞닿아 있는 인물들이 긴장감 넘치는 대립과 내면적 갈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설경구, 유아인, 문소리, 조우진, 이엘 등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해 강도 높은 심리극과 전략 싸움을 펼치며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깁니다. 특히 단순한 여당-야당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권력과 신념 사이의 균열을 인물 중심으로 깊이 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
설경구와 유아인의 갈등 축, 세대와 방식의 충돌
<야당>의 중심은 설경구가 연기한 ‘강준’과 유아인이 맡은 ‘서진우’의 대립입니다. 강준은 수십 년 정치를 경험한 야당 원내대표로, 현실 정치에서 이기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회한 정치가입니다. 반면, 서진우는 막 정치에 입문한 비례대표로, 이념과 신념을 앞세우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이 두 인물은 처음엔 같은 당 소속이지만, 사건이 전개되며 서로 다른 정치적 가치와 방식 때문에 정면 충돌하게 됩니다. 극 중 설경구는 특유의 낮고 무게 있는 발성으로 강준의 단단함과 냉철함을 그려냈으며, 국회 연설 장면에서는 실제 정치인보다 더 정치인 같았다 는 관객 평이 있을 정도로 몰입감을 줬습니다. 유아인 역시 서진우의 불안정한 눈빛과 이상에 대한 집착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으며, 강준과 마주할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관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두 인물이 국회 비공개 회의실에서 진보와 보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벌이는 시퀀스였습니다. 격한 감정이 오가지만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차분한 대사 속에 담긴 의미들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 장면은 <야당>의 전체 메시지를 상징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소리, 조우진, 이엘의 존재감… 조연 이상의 조연
<야당>은 주연뿐 아니라 조연 배우들의 강력한 존재감으로도 완성도를 높입니다. 문소리가 연기한 여당 대변인 ‘최유경’은 드라마 내내 냉정하고 계산적인 캐릭터로, 여당 입장에서 정치 공세를 펼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적대적인 역할이 아닌, 강준과의 과거 인연, 서진우와의 신념 차이 등을 통해 여성 정치인의 고뇌와 전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됩니다. 조우진이 맡은 ‘민상호’는 야당 내 전략통으로, 이념보다는 무조건 ‘이기는 정치’를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겉으론 충성스럽지만 이면에선 정치공작을 계획하고, 누구든 배신할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되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조우진은 특유의 눈빛과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상호를 매우 설득력 있게 연기해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편, 이엘은 정치부 기자 ‘차수정’ 역으로 출연해 정치권 내부 정보를 파헤치는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단순한 보조 캐릭터가 아니라, 강준과 서진우 모두에게 결정적인 변수를 제공하는 키 플레이어로 등장합니다. 이엘은 특유의 날카롭고 관능적인 분위기로, 기자라는 직업군에 무게감을 부여하며 스토리 진행의 매개체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우리가 외면한 진실을 묻다, 관객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
<야당>은 전형적인 정치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특정 정당이나 현실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모든 대사와 상황은 한국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특히 강준이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란 참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정치가 가진 복합성과 대중의 선택이 가진 책임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영화 후반부, 서진우가 내부 폭로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신념을 지키면 버림받고, 침묵하면 살아남는 정치판의 구조는, 이 사회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관객에게 되묻게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드라마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보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엔딩은 명확한 승자 없이, 현실처럼 찜찜하고 복합적인 마무리로 그려집니다. 이 결말은 누군가에겐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정치는 늘 명확한 해답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 있는 마무리였습니다.
<야당>은 단순히 여당-야당의 구도를 넘어, 정치적 신념, 인간의 욕망, 현실과 이상 사이의 충돌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설경구와 유아인의 대립 구도는 클래식한 갈등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문소리·조우진·이엘까지 더해져 배우 중심의 강한 드라마가 완성되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인간에 대한 통찰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인상 깊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극장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마음에 박히는 작품. <야당>은 그런 영화였습니다.